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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고아라는 허리를 앞쪽으로 기울며 눈앞에 있는 높게 솟은 빌딩을 빤히 보았다. 강정아는 매번 자식 얘기가 나오면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자랑했다. 물론 그녀의 자식들이 유능한 것은 맞지만 중요하게 이은비가 이런 대기업에서 출근하니 마을 사람들에겐 개천에서 용 난 것과 다름없었다. 고아라는 회사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곳에 다른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는 몰랐지만, 지금은 아무런 이상도 없어 보였다. 이건 지금이 낮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산 아래에서 봤던 정금자 할머니의 영혼과 구청 앞에서 봤던 여자의 영혼도 전부 대낮에 본 것이다. 오늘은 흐린 날씨였다. 햇볕이라곤 하나도 없어도 그녀는 영혼을 볼 수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남들과 다른 눈을 가지고 태어난 고아라는 어렸을 때부터 영혼을 볼 수 있었고 지금은 이미 익숙하였다. 어릴 때부터 그녀는 영혼을 봐도 무서워한 적 없었다. 설령 흉악한 모습이어도 그녀는 덤덤했다. 예전에 그녀에게 겁을 주던 귀신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녀가 영혼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다행이라고, 그렇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이미 그녀의 손에 소멸하고 말았을 거라고 말이다. 회사의 문은 계속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다. 이때 차 한 대가 안에서 나왔다. 이은비를 기다리고 있던 고아라는 부단히 밖으로 나오는 차량을 보았다. 그리고 주차장에 가득 주차된 차량도 보았다. 꼭 자동차 전시장 같았다. 그녀는 이 회사에 다니는 사람 대부분 차 한 대씩 소유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여하간에 대기업이니까. 그녀가 대학교 졸업하고 취업하려고 했을 때 대기업에 이력서를 넣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스펙이 부족하니까. 중소기업으로 취직하고 그곳에서 영혼을 봤을 때 영혼들은 그녀가 자신들을 본다는 것을 눈치채고 들러붙어 끊임없이 하소연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은 영혼들이 잘 들러붙는 체질이었던지라 영혼들은 밤낮을 가라지 않고 그녀를 귀찮게 했다. “아라야.”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곧이어 회사 입구에서부터 달려오는 이은비의 모습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오피스룩 차림인 이은비는 긴 머리를 단정하게 묶었고 은은한 화장을 하였다. 그래서인지 더 믿음직해 보였고 퀸즈 그룹에서도 대표님 비서로 일하고 있었다. “은비야.” 고아라는 이은비가 회사에서 나오자 바로 웃으며 이은비를 불렀다. “은비야, 조심해. 하이힐 신고 있는데 그렇게 뛰다가 넘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고아라는 조심성 없이 뛰어오는 이은비에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이힐 신고도 막 뛰어오는 이은비가 조금 부럽기도 했다. 만약 그녀였다면 뛰기는커녕 멀쩡히 걷는 것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매일 산을 오르고 내려야 했다. 산길을 걸을 땐 하이힐보다 운동화가 더 편했다. 이은비는 빠르게 고아라의 앞까지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난 괜찮아. 이미 습관이 되어버렸는걸. 오래 기다렸어?” “아니, 네 퇴근 시간에 맞춰서 5분 전에 왔어. 마침 오늘 흐린 날이라 덥지도 않았고.” “가자, 맛있는 거 먹으러. 저녁 먹고 나서 나랑 같이 쇼핑 좀 해줘. 우리 엄마가 나한테 이것저것 사서 네가 갈 때 가져다 달라고 하셨거든.” 그렇지 않았다면 이은비는 고아라가 시내까지 왔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그녀가 알기론 고아라는 매일 산을 올랐기에 이런 번화한 시내로 자주 오지 않았다. “그래.” 고아라와 이은비가 차에 올라탈 때 또 다른 차량이 주차장에서 나왔다. 이은비는 익숙한 마이바흐에 표정이 굳어지더니 옆으로 물러서며 마이바흐가 그녀의 앞을 지나갈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차 안에는 그녀의 회사 대표인 최현우가 있었다. “대표님.” 차 안에 있는 최현우가 그녀의 목소리를 듣든 말든 이은비는 일단 인사를 해야 했다. 고아라와 함께 있는 이은비의 모습에 최현우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고아라가 자신이 아닌 이은비를 만나러 온 것임을. 이은비는 회사 부대표의 비서였다. 그래서 그와 회사에서 마주치는 횟수도 잦았기에 이은비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아라와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서는 몰랐다. 최현우는 창문을 내리지 않았다. 그저 바른 자세로 앉아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 차량은 빠르게 고아라와 이은비의 앞을 지나갔다. 고아라는 멀어져 가는 두 차량을 빤히 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가자, 밥 먹으러.” 이은비는 먼저 고아라의 차에 올라탔다. 2분 뒤, 고아라는 이은비를 태우고 회사에서 벗어났다. “방금 그 차는 우리 회사 대표님과 경호원의 차야. 우리 대표님은 아직 젊긴 하시지만, 성격이 차갑지. 일하다 보면 최 대표님이랑 자주 마주치게 되는데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긴장한다니까. 난 내가 최 대표님이 아니라 부대표님 비서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아니었으면 난 3개월도 못 버티고 회사 그만뒀을 거야.” 고아라는 은근 최현우를 경외하고 있었다. 그녀뿐 아니라 회사의 모든 직원들이 최현우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고아라는 간단히 대답한 뒤 그 마이바흐가 눈에 익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와 결혼하게 될 사람의 차도 마이바흐였지만 뒤를 따르는 경호원의 차량은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미래 남편의 차량 번호를 외우지 않았기에 방금 지나간 차가 자신이 아는 사람의 차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그저 같은 제품이라고 생각했다. 번화한 인하 시내에 마이바흐를 소유한 재벌은 아주 많았다. 어쨌든 결혼도 시키는 대로 할 뿐 혼인신고를 마치고 나서 조용히 지내면 되었다. “참, 아라야. 여긴 어쩐 일로 온 거야?” 이은비가 궁금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바로 말해.” “응, 고마워. 도움이 필요할 때 너한테 먼저 말할게.” 고아라는 친구인 이은비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얘기하지 않았다. 그녀가 말하지 않으니 이은비도 더 캐물어 볼 수 없었다. 이은비는 멀지 않은 곳에 이미 호텔 레스토랑을 예약해 두었기에 바로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점심이었던지라 식당엔 사람이 많았다. 두 사람은 예약해 둔 자리로 왔다. 덕분에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이 비서님.” 이때 호텔 매니저가 이은비를 발견하고 웃으며 다가왔다. 이은비에게 예약한 룸을 확인한 뒤 그는 열정적인 모습으로 두 사람을 데리고 목련룸으로 안내했다. 이은비를 향한 호텔 매니저의 열정에 고아라는 이은비가 자주 이 호텔 레스토랑에서 소비할 것으로 추측했다. 고아라와 이은비는 그렇게 식사를 하게 되었다. 같은 시각, 같은 호텔에서 최현우도 점심을 먹고 있었다. 다만 그는 혼자였다. 눈앞엔 자주 먹던 음식이 있었지만, 최현우는 오늘따라 유난히 맛이 없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결국 수저를 내려놓았다. 휴지를 뽑아 입을 닦고 목련룸에서 나왔다. 그를 발견한 두 명의 직원이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그는 듣는 척도 하지 않고 성큼성큼 복도 오른쪽 끝으로 왔다. “도련님.” 운전기사와 네 명의 경호원이 다른 룸에서 나왔다. 자신들이 모시는 도련님이 자신들보다 먼저 나오자 그들은 바로 따라나섰다. “현아.” 최현우는 그들에게 다가가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이 비서 옆에 서 있던 여자 봤어?” 현이라고 불린 경호원은 이내 빠르게 앞으로 나서며 답했다. “봤습니다. 하지만 스쳐 지나가 듯 봐서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이은비 옆에 서 있던 여자가 아주 예쁘다는 것만 기억했고 나이도 이은비와 비슷해 보였다. 운전기사는 방금 본 여자가 최현우의 아내가 될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밝힐 생각이 없어 보이는 최현우에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지금 당장 이 비서와 그 여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 이 비서랑 헤어지고 나면 그 여자 데리고 내 앞으로 와.” 이현이 답했다. “이 비서는 오늘 직접 운전하지 않았습니다. 이따가 아마 일행분의 차로 회사로 돌아올 것 같은데, 제가 회사 앞에서...” 최현우는 이현의 말허리를 잘랐다. “회사 앞에서 기다리지 마. 몰래 찾아가서 말을 전해, 최대한 회사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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