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차현승은 구석에 서서 이 모습을 전부 지켜보았다.
그는 강서현이 직접 그녀와 차재욱, 차현승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과 함께 다른 집 아이를 데리고 떠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었다.
그는 화가 나 눈시울을 붉히며 차재욱의 품에 확 안겼다.
“아빠. 저 여자는 우리 엄마가 아니에요. 전 저 여자를 다시는 보지 않을 거예요.”
그 말에 차재욱은 퉁명스럽게 그를 흘겨보며 한마디 했다.
“네가 네 엄마를 보고싶어 해도, 네 엄마가 너를 원하지 않을 거야. 그나저나 오늘 도대체 왜 그런 거야? 왜 그 애를 장비실에 가뒀어?”
차현승은 두 볼이 빨갛게 부풀어 오른 채 고개를 떨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 그냥 그곳에서 잠시 쉬게 할 생각이었어요.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요.”
“만약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면 난 지금 당장 네 다리를 부러뜨렸을 거야.”
그 말에 차현승은 깜짝 놀라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에 거슬려서 그저 혼 좀 내주려고 그런 거예요.”
“설마 네 엄마가 그 아이한테 잘해줘서 질투한 거야?”
차재욱은 차현승의 머리를 가볍게 톡톡 치며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말했잖아요. 저 여자는 제 엄마가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누구한테 잘해주든지 전 전혀 상관하지 않아요.”
차재욱은 그의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차현승은 고작 여덟 살짜리 아이였기 때문에 심성이 착하고 매우 단순했다. 그래서 좋고 싫음이 전부 얼굴에 드러나는 편이었다.
이런 생각에 차재욱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네가 한 일이니 뒷감당까지 스스로 해야 해. 집에 가서 반성문을 쓰고 사람들 앞에서 장우현한테 사과하도록 해.”
그러자 차현승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방법이 없나요? 전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애한테 사과하고 싶지 않아요. 창피하단 말이에요.”
“그럼 네 엄마를 해고시킬까?”
차재욱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말에 차현승은 그저 입술을 꽉 깨물기만 했다.
“알았어요. 집에 돌아가서 반성문을 쓰고 내일 우현이한테 사과할게요. 그러면 되잖아요.”
잔뜩 긴장한 차현승의 모습에, 차재욱은 그의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명히 마음속으로 질투하고 있으면서 인정하지 않았다.
차재욱은 차현승의 머리를 가볍게 한 대 때렸다.
“집에 가서 잘 반성하도록 해.”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어 보였던 차현승이 장우현에게 사과하겠다고 하자 교장은 그제서야 이마에 맺힌 땀을 슥 닦았다.
“대표님, 아이들을 관리하는데 있어서 강 선생님만한 실력자는 없습니다. 현승이가 강 선생님 반에 있으면 점점 말을 잘 들을 수 있을 거예요.”
그 말에 차재욱은 교장을 빤히 쳐다보았다.
“강서현을 잘 보살피도록 하세요. 강서현이 조금이라도 불공정한 대우를 당하는 날엔, 교장 선생님께서도 자리에서 물러날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그러자 교장은 깜짝 놀라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절대 그럴 리 없을 겁니다. 제가 대표님 대신 강 선생님이 그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잘 챙기겠습니다.”
잠시 후, 차재욱은 담담하게 대꾸하며 차현승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현재 그의 머릿속은 온통 강서현이 조금 전에 한 말뿐이었다.
조금 전 그녀는 자신의 혈소판 수치가 현저하게 적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심각한 병세를 그녀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일까?
‘내가 너를 함정에 빠뜨려서 어쩔 수 없이 아들이 생긴 거라고? 당시 누가 술을 많이 마시고 나한테 질척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건가?’
강서현은 차재욱을 그저 잠자리 상대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자신의 병세까지 숨겼었다.
‘4년이란 시간 동안, 나한테 진심이었던 적이 있기는 했을까? 설마 몇 년 동안 줄곧 나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한다고 말했던 것이 전부 거짓이었단 말이야?'
이런 생각에 차재욱은 화가 나 핸들을 쾅 내리쳤다.
바로 그때, 갑자기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화면에 뜬 발신자를 확인하고 그는 즉시 수신 버튼을 눌렀다.
휴대폰 너머에서 김민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강서현 씨의 지난 4년을 조사하라고 하신 것 말인데요. 이제야 단서를 좀 찾았습니다.”
그 말에 차재욱은 미간을 찌푸렸다.
“말해.”
“강서현 씨는 차씨 가문을 나간 뒤, 그녀가 머물렀던 보육원에 다시 갔었습니다. 그곳에서 심리상담사로 일하고 있던 이준 씨를 처음 만나 지금까지 가깝게 지내게 된 것이고요. 그러다가 1년 후, 강서현 씨는 딸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6개월 때 딸에게 경미한 자폐증이 있다는 걸 발견했었죠. 몇 년 동안 치료를 받고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강서현 씨는 딸에게 더 나은 치료를 받게 하기 위해 여기로 돌아온 겁니다.”
이 말에 차재욱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콩이가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던 모습 뿐이었다.
콩이의 미소를 보고만 있으면 마음이 치유되는 것만 같았다. 이치대로라면 그는 이 아이를 매우 싫어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콩이는 강서현이 다른 남자와 낳은 아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 마음속의 차현승의 자리도 빼앗아갔었다. 하지만 그는 콩이를 싫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왠지 모르게 호감이 가기도 했었다.
‘그렇게 귀엽고 예쁜 애가 왜 그런 병에 걸린 건지…’
이런 생각에 차재욱은 서랍에서 콩이가 선물한 막대사탕을 꺼내 냄새를 맡았다.
콩이의 부드러운 미소가 사탕의 달콤함에 섞여 차재욱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그는 심지어 자신과 아무 관계도 없는 콩이가 꼭 말을 할 수 있게 도와줄 거라고 다짐했다.
차재욱은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한 것은 분명 강서현에 대한 미안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예전의 잘못을 만회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에 그는 김민우에게 지시를 내렸다.
“경성 최고의 전문가에게 연락해 딸의 병을 고칠 수 있게 돕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김민우가 말했다.
“대표님. 강서현 씨가 차씨 가문을 떠난 후, 몇몇 대형 웨딩드레스 브랜드에서 강서현 씨에게 연락을 취해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하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강서현 씨가 전부 거절했습니다.”
차재욱은 눈살을 찌푸렸다.
“왜?”
“강서현 씨는 영감이 고갈됐단 이유로 거절했었지만, 강서현 씨가 지도한 학생은 WTG 웨딩드레스 디자인 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WTG는 국제 웨딩드레스 디자인 대회 중 가장 수준이 높은 대회로 그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란 여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때 강서현은 최고의 대회에서 최고의 상을 받는 것을 꿈꿔왔었다. 그녀는 세계가 주목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능력이 있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직접 참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지도자가 된 것일까?
차재욱은 생각하면 할수록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의 머릿속에 불현듯 섬뜩한 추측이 떠올랐다. 그런 생각에 차재욱의 등에서는 차가운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강서현이 4년 전에 어떤 부상을 입었는지 조사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