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소란스러웠던 현장은 순식간에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모두들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안으로 들어오는 차재욱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날카로운 눈동자는 마치 불꽃처럼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했다.
음산한 공포, 그리고 강력한 억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차재욱의 카리스마에 깜짝 놀란 그 여자는 말을 더듬으며 한마디 했다.
“당… 당신은 대체 누구야? 누군데 남의 일에 간섭하는 거야?”
차재욱의 목소리는 마치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여기에서 소란을 피우고 반 분위기를 망쳤기 때문이죠.”
그 말에 여자는 코웃음을 쳤다.
“이 학교는 강진 그룹이 후원하는 곳인데, 내 남편이 바로 강진 그룹 대표의 최측근으로 아주 위세가 있는 사람이야. 교장을 데려온다고 해도 감히 나를 건드리지 못해. 그런데 당신이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하는 거야?”
그러자 주위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너도나도 한마디 씩 주고 받았다.
“맞아요. 지훈이네 아버지는 강진 그룹의 대표와 잘 아는 사이에요. 그러니까 괜히 눈 밖에 날 행동은 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아이까지 연루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천재반에 아이를 배정한 것을 보면 어쨌든 강진 그룹과 각별한 사이가 맞는 거겠죠.”
사람들의 말에 그 여자는 거만하게 고개를 빳빳이 쳐들었다.
“들었어? 그러니까 괜히 쓸데없이 참견하지 마. 그렇지 않으면 당신 아이까지 이 학교에서 내쫓을지도 모르니까.”
이 말을 들은 차재욱은 입꼬리를 잡아당기며 불쑥 물었다.
“남편 이름이 어떻게 되죠?”
“왜? 이제야 무서운 거야? 내 남편은 강진 그룹의 재무팀 총책임자인 윤범길이야. 그이는 당신을 바로 이곳에서 내쫓을 수 있어.”
그 여자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 여자의 도발적인 웃음을 뒤로하고, 차재욱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휴대폰을 꺼내 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당장 윤범길을 내 앞으로 데리고 와.”
그 모습에 여자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차재욱을 비웃기 시작했다.
“참나. 누가보면 아주 대단한 인물인 줄 알겠네. 내 남편이 어떻게 당신 말을 들을 수 있겠어? 강진 그룹의 대표가 아니고서야…”
그때,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윤범길이 허겁지겁 뛰어들어왔다.
그는 여자의 멱살을 움켜쥐고 얼굴을 한 대 세게 때렸다.
“이 빌어먹은 여편네야. 감히 대표님을 건드려? 빨리 사과하지 못해?”
갑작스러운 상황에 여자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저 멍하니 차재욱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사람이 정말 당신 회사 대표예요?”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단 소리야? 교장실에 갔다 온 사이에 이게 지금 무슨 짓이야? 집에 가서 오늘 이 책임을 어떻게 물을지 각오하는 게 좋을거야.”
윤범길은 강서현의 조언을 듣고 아이를 일반 반으로 옮기려고 했었다. 그리서 그의 아내에게 아들을 데리고 먼저 반으로 가라고 한 것인데, 교장과 이야기를 끝내기도 전에 김민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었다.
그의 아내가 반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어 차재욱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내용이었다.
그 문자에 깜짝 놀란 그는 허둥지둥 교장실에서 뛰어나왔었다.
윤범길의 말에 그 여자는 깜짝 놀라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평소에 윤범길이 차재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누구보다 냉혈하고 무자비해서 그의 미움을 사는 사람은 결코 좋은 결말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여자는 깜짝 놀라 다급히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제가 감히 대표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강서현의 얼굴과 손에 난 상처를 발견하자 차재욱의 목소리는 더욱 차가워졌다.
“학부모가 앞장서서 교사를 비방하고 인신공격까지 해 교사와 학생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었는데 교장선생님, 이 일을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그러자 교장은 깜짝 놀라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말했다.
“학부모는 교사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해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은 바로 퇴학처리를 밟는 게 원칙입니다.”
그 말에 그 여자는 깜짝 놀라 강서현 곁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강서현의 손을 잡고, 간절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강 선생님, 방금은 제가 너무 충동적이었어요. 손찌검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정중하게 사과를 드립니다. 만약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면 저를 때리셔도 됩니다. 제발… 저희 아들을 이 학교에서 퇴출시키지 말아주세요. 전 정말 이 학교를 아주 좋아합니다.”
강서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빛에는 일말의 동정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전에 제 딸과 저를 모욕할 땐 이런 결과를 초래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나요?”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선생님 딸에게도 사과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용서해 주세요. 제 아들까지 연루시키지 말아주세요.”
그녀가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고 다른 학부모들은 서둘러 그녀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강 선생님, 잘못을 인지하고 있으니까 부디 용서해 주세요. 그저 다 오해잖아요.”
“그러니까요. 어른들 일에 아이들까지 연루시키지 않는 게 좋겠어요. 지훈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잖아요.”
그 말에 강서현의 표정은 한껏 굳어졌다.
“그럼 제 딸이 당신 입에 오르락거렸을 때는요? 저 여자가 조금전 제 딸을 벙어리라고 욕하고 제 딸 사진을 발로 밟았을 때, 왜 아무도 콩이는 죄가 없다고 나서지 않은 거예요? 조금 전에는 아무도 저 여자를 말리지 않더니 왜 이제와서 저한테 아량을 베풀어란 겁니까? 선생님은 사람이 아닌가요? 저희 선생님들도 자신의 아이를 보호할 자격이 있습니다.”
강서현의 말에 현장에 있던 모든 학부모들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그때, 강서현은 또다시 그 여자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용서해 달라고 하셨죠? 그럼 배후에서 이 일을 지시한 사람이 누군지 말하세요.”
그 말에 그 여자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아니요. 누가 시킨게 아니라 그냥 제가 평소에 의심이 너무 많아서 제 남편에게 다가가는 여자는 다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러니까 강 선생님. 선생님께 피해를 준 건 다 제 잘못이에요. 다른 사람하고는 상관 없어요.”
그 말에 강서현은 냉소를 지었다.
“어제 아이 아빠가 아이를 데리러 왔었는데, 그 사진은 누가 당신에게 보낸 거예요?”
“제 친구가요.”
“그 친구 이름이 혹시 진이나인가요?”
그 말에 그 여자는 물론 차재욱마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차재욱은 강서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뭐라고?”
강서현은 비웃음이 가득한 담긴 두 눈으로 차재욱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왜요? 제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요? 아니면 약혼녀를 지켜주고 싶은 거예요?”
차재욱은 목젖을 굴리며 말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 말에 강서현은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진이나에게 아주 잘해주는 것 같군. 그녀의 말이라면 전부 믿는 모양이야.’
차재욱은 진이나가 우울증이 있다고 말하면, 강서현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호하게 이혼을 신청했고, 진이나가 위험할 거란 생각이 들면 강서현을 또다시 방패막이로 삼았었다.
도대체 진이나를 얼마나 사랑해야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걸까?
이런 생각에 강서현은 손끝을 덜덜 떨며 차갑게 말했다.
“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대표님께서 직접 확인해 보세요. 물론, 약혼녀를 두둔하고 싶다면, 저는 대표님께서 그녀를 대신해 몇백 가지 핑계를 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이라면 모든 증거를 보존하고 법으로 정의를 되찾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