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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침대에 누워있던 여민석과 유소정은 동시에 입구 쪽을 쳐다봤다. 여민석은 상반신은은 탈의한 채로 유소정의 위에 올라타 있었고 유소정은 가는 팔로 그의 군살 하나 없이 단단한 몸을 끌어안은 채 붉은 입술은 그녀의 가슴 근육을 스쳤다. “꺄악!” 유소정은 비명을 지으며 여민석의 등 뒤로 숨었다. 그 당황한 모습은 무슨 잘못을 하다 들키기라도 한 듯한 모양새였다. 여민석은 유소정을을 확 밀쳐냈지만 선견지명이 있었던 유소정은 그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아 버리는 바람에 도무지 밀쳐낼 수가 없었다. “다 썼다고 날 버리는 거야?” 유소정은 부드럽고 갈라진 목소리가 천천히 울렸다. 여민석과 백은서의 표정이 동시에 변했다. 전자는 음산해졌고 후자는 하얗게 질렸다가 붉게 변하더니 이내 다시 하얗게 질리더니 예쁜 두 눈에 물기가 가득 어렸다. 서러움 가득한 눈으로 여민석을 본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보기만 해도 가련해 마음이 갈 정도였다. 유소정은 여민석을 풀어준준 뒤 자리에 앉아 손을 닦았다. 작은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손에 묻은 기름을 깨끗하게 닦은 뒤에야 유소정은 자리에 일어나 담담하게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앉아, 내 남편 보살펴 주러 와줘서 정말 고마워.” 분명 아주 평범한 말이었지만 유소정은 몹시 매혹적이고 허스키한 목소리와 말투로 말한 탓에 그 말만 들으면 뭔가 이상한 상상이 됐다. 침대에 누워있던 여민석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문 채 유소정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저 여자는 자기가 뭐라고 백은서 앞에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백은서를 입술을 깨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콩알만 한 눈물이 눈시울에 가득 고여 있어 몹시 유약해 보였다. 유소정은 그 미인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을 보자 아무리 자신이 여자인 데다 연적이라지만 백은서는 확실히 아름답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정말로 사람이 우러러볼 만한 여자였다. 그리고 유소정이 백은서를 지나쳐 밖으로 나가자 백은서는 눈 눈물을 후드득 떨어트리며 조용히 그를 불렀다. “소정 씨….” 유소정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 거리는 몹시 가까웠다. 백은서는 별안간 그녀의 손을 잡더니 뒤로 넘어갔다. “꺄악!” 비명이 울려 퍼졌다. 침대에 앉아 옷을 잠그던 여민석은 재빠르게 달려 나갔고 백은서를 품에 안은 채 인간 쿠션이 되어주었다. 백은서는 여민석의 품에 안긴 채 머리는 저도 모르게 그의 턱과 부딪혔다. 백은서의 손에 끌려 제대로 서지 못한 유소정은 휘청거렸다. 비록 넘어지지 않기 위해 손잡이를 잡았지만 당황한 사이에 발목을 삐고 말았다. 삔 발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유소정은 얼굴이 향하게 질렸다. 시선을 내리니 여전히 누워서 입을 맞추고 있는 남녀를 본 그녀는 두 눈이 무언가에 찔리기라도 한 듯 호흡을 멈춘 채 멍하니 두 사람을 쳐다봤다. 영웅이 미인을 구하고 키스를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로맨틱한데 왜 그녀는 이토록 괴로운 걸까? “석아, 발이 너무 아파.” 백은서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며 나른한 손으로 그의 허리를 안았다. 여민석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은 뒤 다정하고 인내심 있게 물었다. “발목이 삔 거야? 아님 어디 다쳤어?” “응! 삔 것 같아. 봐봐, 엄청 부었어….” 백은서는 혀가 짧은 소리를 내며 한마디 할 때마다 눈물 두 방울을 흘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게 쭉 뻗은 두 눈시울은 순식간에 토끼처럼 붉어졌다. 유소정은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이 숨이 턱 막히는 방에 더 있다간 저도 모르게 그 누구도 모르고 있던 아이를 위해 복수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들었다. “유소정! 사람을 밀어놓고 이대로 갈 생각이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여민석은 빠르게 다가와 유소정의 손을 덥석 잡았다. 손목이 잡힌 유소정은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다. 손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이나 발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다 심장이 아픈 것만 못햇다. 겨우 한 땀 한 땀 기워낸 심장은 곳곳에 바느질 흔적이 가득했지만 여전히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힘겹게 괘를 들어 맑고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여민석, 넌 내가 아직 덜 비참한 것 같아?” 냉랭함 속에 슬픔이 담긴 목소리에 그는 순간 흠칫했다. 여민석은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예쁜 두 눈과 시선이 마주하자 그대로 얼어붙었다. 영원히 놀란 사슴같이 두려움에 떨던 두 눈은 오직 그를 볼 때만 빛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피눈물을 흘리는 것만 같은 기분에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의 힘을 풀었다. 요소정은 그를 지나쳐 침대에 앉은 백은서를 쳐다봤다. 창백한 얼굴의 그녀는 지금 오만한 눈으로 유소정을 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승리를 뽐내고 있는 모양새였다. 유소정은 목구멍이 말라가는 것 같아 침을 삼키려 했다. 하지만 메마른 목은 마치 칼날이라도 삼키는 듯 힘겹게 그걸 가로막았다. “쟬 건드리면 어떤 꼴이 나는지 내가 직접 얘기를 해야 할까?” 유소정은 여민석이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마음이 기울어져 있으니 당연히 전혀 상관없는 자신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유소정은 손을 빼낸 뒤 다시 한번 백은서를 쳐다봤다. 침대에 앉은 백은서는 천천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석아, 내가 넘어진 건 소정 씨 탓이 아니야. 그러니까 뭐라고 하지 마. 아까는 내가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달려오면서 삔 거야….” 여민석은 곧바로 등을 돌려 조심스럽게 그녀의 발을 살폈다. 하얀 발목은 이미 붉게 부어서 퉁퉁 불어 있어 섬뜩했다. “하지만 석아, 소정 씨한테 나 안마 좀 해달라고 할 수 있어? 학교에 있을 때 전공 성적이 언제나 좋았던 사람이라.” 백은서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속눈썹을 깜빡였다. 바비 인형같이 정교한 얼굴이 애원하듯 여민석을 쳐다봤다. 유소정은 두 사람의 다정한 화면을 보고 싶지 않아 곧장 등을 돌렸다. “거기 서.” 여민석이 그녀를 불렀다. 유소정은 퉁퉁 부은 자신의 발을 미처 내려놓기도 전에 차가운 여민석의 목소리가 들려왓다. “와서 은서 마사지해.” 여민석이 지시했다. 그건 하나의 명령이었다. 그녀는 도무지 반항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유소정은 천천히 부은 다리를 내려놓았다. 바늘이 뼈를 뚫고 파고드는 것 같은 고통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크게 심호흡을 했다. 정말 재수도 없었다. 저 두 사람과 엮이기만 하면 정말 재수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소정 씨, 싫은 거예요? 그럼 됐어요….” 백은서는 몹시 얌전하게 그녀의 편을 들어줬다. 여민석의 호흡이 더 무거워졌다. 유소정은 소리 없이 크게 심호흡 몇 번 한 뒤에야 드디어 마음속의 고통을 내리누른 뒤 미소를 지으며 등을 돌렸다. “마사지해달라고?” 여민석은 그 미소를 어리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를 듣자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왠지 모르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3천만 원이야, 입금 먼저.” 유소정은 입구에 딱 서 있었다. 마치 돈을 주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떠날 모양새였다. 여민서은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돈 생각에 미친 거야? 네 두 손이 그 정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있는지 없는지는 너에게 달린 게 아니라 대중들한테 달린 거야.” 유소정은 심장의 아픔을 꾹 참으며 능글맞게 웃었다. “여 대표 앞에선 어쩌면 그런 가치가 없겠지만 구중혁 씨는 다르게 생각하지 않을까? 3천만 원이 아니라 3억이라도 기쁘게 내지 않을까?” 구정혁은 계약을 할 때 매 회차 출연료만 해도 4천만 원을 줬다. 고정된 출연료 외에 보너스도 있었고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일정 수준을 달성하는 것과 나라를 지켰던 어른들이 말년을 평온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을 때의 보너스는 가격도 달랐다. 하지만 절대로 그녀가 여민석에게 부른 값보다 낮지 않았다. “천천히 고민해 봐. 언제 결정되면 얘기하고.” 유소정은 평온한 얼굴로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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