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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주방에서 나오던 정윤지가 유소정을 보더니 기뻐했다. "사모님, 오셨네요?" 아이를 잃은 슬픔에 잠긴 유소정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마치 원수라도 쳐다보는 듯 바닥의 타일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유소정의 이상한 모습을 눈치챈 여민석은 별로 마음에 두지 않으며 말했다. "마지막 임무야. 나랑 같이 사진을 찍어 할아버지에게 보내주고 나면 여기를 떠나도 돼.” 유소정이 원망 가득한 눈빛을 거두고는 마음속의 두려움을 억누르며 거절했다. "싫어." "너는 거절할 권리가 없어!" 여민석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더니 그녀가 조금 전에 쳐다보던 타일 위를 밟으며 말했다. 두려운 마음을 억지로 통제하던 유소정은 그곳에 서자 머릿속에 문득 그날 핏빛으로 물들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것은 고통스러움에 도움을 청하다 절망하던 순간이며 그에 대한 모든 사랑을 버리게 된 순간이었다. 유소정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창백한 얼굴은 햇빛 아래에서 더욱 희고도 투명해 보였다. 유소정의 이런 모습에 여민석과 정윤지가 의아해했다. 특히 정윤지는 유소정이 삼계탕을 끓이던 날 그녀가 이 집에 오기 전에 여민석이 그녀에게 연락해 집에 도둑이 들었는지 확인하라고 했었다. 집 안에 들어온 그녀는 집 안의 모든 것이 멀쩡하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다만 CCTV가 이유 없이 고장 나 있었고, 공기 중에 흐릿한 피비린내가 묻어나는 것 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나중에 주방 안에서 닭 피 한 팩을 찾아낸 정윤지는 유소정이 조금 전에 삼계탕을 끓인 것을 떠올리고는 의심을 풀었다. 유소정의 그 불쌍한 아이는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가버렸다. 마치 꿈이라도 꾼 것처럼 그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녀가 여민석과의 아이를 뱄었다는 것을 몰랐다. "이모님, 세탁한 아기 옷을 가져다줘요." 여민석이 벌벌 떨고 있는 유소정을 잡아당겨 일으키고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설령 연기하고 싶어도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 말하고 나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정윤지가 흠칫 놀라더니 곧바로 대답했다. "알았어요. 제가 곧 가져올게요." 정윤지가 탈수를 마친 아기 옷을 대야에 담아 내오자 여민석이 휴대폰을 정윤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조금 뒤, 저랑 유소정이 빨래를 널 때 그 장면을 찍어요.” "어? 알겠어요!" 정윤지가 손의 물기를 닦고는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아기 옷을 손에 든 여민석이 유소정을 바라보니 그녀가 아직도 제자리에 멍하니 굳어있었다. 그녀는 마치 영혼이라도 빠진 뜻 붉어진 두 눈에 조금의 생기도 없었다. 그는 두말없이 아기 없을 그녀의 손에 쥐여주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유소정, 조금 눈치 있게 굴어!” 부드러운 아기 옷을 손에 든 유소정의 두 눈에 점차 초점이 잡히더니, 그녀가 마침내 귀여운 아기 옷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 옷들은 모두 그녀가 시험관 시술을 받기로 결정한 뒤, 열심히 고른 것들이었다. 매번 병원에 가서 호르몬주사를 맞을 때마다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아기 옷 가게를 돌았다. 처음에는 그저 구경하기만 했을 뿐 물건을 사지 않았다. 유소정은 두 개의 배아가 성공적으로 체내에 이식된 뒤에야 비로소 쇼핑을 할 때 아기 옷 가게에 들러 아기 옷 한두 벌을 샀다. 아기 옷을 손에 든 유소정이 뼈마디가 질릴 정도로 가녀린 손가락을 꼭 움켜쥐고는 예쁜 얼굴에 반항적인 표정을 지었다. "손에 힘 풀어.” 여민석이 그녀를 뒤쪽에서 끌어안으며 큰 손으로 그녀와 함께 아기 옷을 붙잡았다. 등 뒤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가슴의 온도를 느낀 유소정이 퍼뜩 정진을 차렸다. 그녀가 아기 옷을 쥔 손을 놓더니 떨리는 손으로 여민석을 밀어냈다. 비록 마음은 무너져 내렸으나 얼굴에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여민석, 사람 말을 못 알아들어? 내가 싫다고 했잖아!" "그래서?" 여민석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서더니, 낯선 사람을 보는 듯한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너는 뭐가 그렇게 두려워? 할아버지 명령을 거역하기 두려워?” 유소정이 여민석을 깔보는 듯한 눈빛으로 피식 비웃으며 말했다. "너랑 백은서의 스캔들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나는 왜 네가 두려워하는 것을 보지 못했지?" "너랑 내가 행복한 얼굴로 아기가 태어나기를 기대하는 사진을 찍더라도 그게 무슨 소용인데? 가짜는 결국 가짜일 뿐인데!" "아니면 너는 네 애인이 이 가짜 사진을 보고 슬퍼하는 게 안타깝지도 않아? 너는 내가 이 가짜 사진으로 네 애인을 불륜녀로 몰아가는 것이 두렵지도 않아?" 유소정은 차분하게 그에게 물었다. 이 순간 그녀는 이미 마음이 진정됐다. 비록 그날 벌어진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조금 두려웠지만, 마음은 이미 가라앉았다. 여민석은 그녀의 질문에 한마디도 하지 못했으나, 얼굴은 이미 더없이 어두워졌다. 매처럼 날카로운 두 눈이 유소정의 허약한 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넓은 거실에 서 있는 그녀는 더욱 작아 보였다. 그녀의 몸도 며칠 전보다 더 야위어 보였다. "더 할 말이 없으면 다음에는 이혼할 때 보자. 제발 백은서랑 오래도록 잘 지내길 바라.” 유소정이 입가에 역겹다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유소정이 등을 곧게 펴고 고개를 든 채 가슴을 내밀고는 나른한 두 다리에 힘을 주며 도도하게 밖으로 걸어 나갔다. "거기 멈춰!" 유소정이 그 말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으나 곧바로 걸음을 내디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유소정! 어디 감히 이 별장에서 나가기만 해 봐!" 여민석의 음산하고도 위협적인 목소리가 텅 빈 거실 안에 울려 퍼졌다. 유소정이 대문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거리를 가늠해 보더니 결국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돌려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그럼, 이혼 협의서에 사인하고 나서 이 집에서 나가도록 할게.” 평소 두 사람 사이에는 할 말이 별로 없었다. 오늘 그가 그녀와 그렇게 많은 말을 했으나 그 대부분이 그녀를 협박하는 말이었다. ‘나 참 어이없어서 정말. 이혼하자고 해도 동의하지 않으며 나를 괴롭히려 들지.” "유소정." 여민석이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이 층에 올라간 유소정은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부드러운 침대에 누워 이불로 몸을 꼭 감쌌다. 마치 이래야만 온기를 느낄 수 있어 지옥 같은 고통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유소정은 그대로 이튿날 점심때까지 푹 잤다. 깊은 잠에서 깬 그녀는 너무도 오래 잔 탓에 일어날 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샤워를 마친 유소정은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녀가 주방에 가서 먹을 것을 찾으려고 소파를 지나칠 때 편한 옷차림의 여민석을 보게 되었다. ‘여민석이 어젯밤에 여기서 잤어?’ 여민석이 한가롭게 소파에 기댄 채 손에 오늘의 경제 신문을 들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아메리카노 한 잔이 놓여 있었다. 곁눈질로 유소정을 보게 된 여민석이 얇은 입술을 살짝 벌려 말했다. "오늘 아침에는 네가 끓인 보양죽을 먹고, 점심에는 삼계탕을 먹고 싶으니 빨리 가서 준비해. 그리고 별도로 도시락을 하나 싸 줘.” 지시를 내리는 데 익숙한 여민석의 그 모습을 본 유소정은 조금 우스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자기 말에 따라 음식을 준비해 주고 백은서를 위해 도시락을 싸 주리라는 저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지?’ 유소정이 그의 말을 거절하려던 차에 여민석의 휴대폰이 울렸다. 얼굴을 굳힌 채 삐딱한 태도로 명령하던 여민석이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곧바로 표정을 풀었다. 유소정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백은서에게서 온 전화라는 것을 눈치챘다. 전화가 막 연결되어 여민석이 입을 열기도 전에 유소정이 수줍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여보~ 아침부터 삼계탕을 먹는 것은 조금 너무 한 것 같은데? 어젯밤 고생했어...." 유소정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여민석이 재빨리 다가와 그녀의 붉은 입술을 막더니, 눈빛으로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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