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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5장 잘난 척하지 마

“기풍 씨는...” 신유정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해외에서 지내는 동안 화법 학원까지 다닌 그녀였기에 최대한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많이 힘들어하죠. 하지만 할아버님과 정면으로 충돌하진 않았어요. 아버님도 아시겠지만 기풍 씨 워낙 착하잖아요. 가정 교육도 잘 받았고요. 할아버님께서 요즘 몸이 많이 안 좋으시다면서 괜히 자극하고 싶지 않다고 일단 저더러 오피스텔에서 지내라고 했어요. 할아버님 마음이 풀리시면 다시 절 집으로 들이겠다고요.” 물론 이 모든 건 신유정이 지어낸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진택현은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상황이 그의 계획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깟 첫사랑 때문에 아버지와 부딪힌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긴 하지.’ “그것만으로 충분해. 불만의 감정이 천천히 쌓이게 해야지.” 진택현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부정적인 감정이 어느 정도 쌓이다 보면 언젠가 폭발하기 마련이지... 아버지는 내가 잘 알아. 항상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독단적인 인간이지. 아들 출세길도 막아놓은 판에 손주라고 다르겠어? 그깟 노블레스 오블레주에 빠져선... 영감탱이... 의미없는 도덕감, 책임감에 묶여 평생 외롭다 죽어라.’ 진택현은 생각하면 할 수록 화가 치밀어 주먹을 꽉 쥐었다. ‘감히 어디서 굴러먹다 온지도 모르는 손녀한테 회사를 넘기려 해? 정말 노망이라도 난 거야? 이렇게 나오는 이상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다 이거야. 내 것이었던 걸 전부 되찾을 거야.’ 진택현은 평생 가시를 숨기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온화한 외모와 분위기 덕분에 웬만한 사람들은 다 그에게 다가오려 했고 진씨 가문에서 받은 교육 덕분에 적어도 사람들 앞에선 우아함을 내려놓지 않을 정도의 인내심도 갖추었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이상 아무 욕심 없는 척 가만히 있을 순 없다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넌 계속 계획에 집중해. 가끔씩 기풍이한테 언질이나 주고 말이야. 사랑하는 두 사람을 갈라놓은 존재가 아버지라는 걸 잊지 못하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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